사람마다 근본이 되는 가치관들이 있다. 그 가치관은 부모에게서, 친구에게서 올 수도, 사람이 아니라 책과 동영상 같은 매체에서 올 수도 있다. 같은 무리는 비슷한 가치관을 형성하기에,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짝지을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 생각과 블로그의 모든 글들은 이 책으로 부터 나왔다. 블로그를 살펴보고 이 책을 본다면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내 인생 곳곳에 깊숙이 녹아들어있다. 그만큼 나에게 인생 책이자, 내 근본을 이루는 가치관을 담고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저냥 살고있는 나를 보다 좋은 생각들로 이끌어 주었다.
책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다. 이 책은 황제가 전쟁터에서 썼던 글들을 엮은 것이다. 로마 최고 권력자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검토하고 옳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황제는 어떠한 것도 손에 쥘 수 있고, 어떠한 욕망도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서 윤리적인 삶을 선택했다. 다른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인듯 싶다. 방탕한 삶, 나태한 삶, 욕망으로 찬 삶은 당장은 즐거울지 몰라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우주는 자연 또는 섭리에 의해 지배되며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다. 어떠한 사건이든 운명에 의해서 일어나며 그것들은 사물의 본성과 이성에 맞게 일어난다. 사물들에게는 본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선이다. 가령 망치가 있다면 망치의 쓸모, 본성은 못을 잘 박는 것에 있다. 못을 잘 박는 망치라면 본성을 최대한 발휘한 것이다. 배의 쓸모는 튼튼하고, 항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전제들 속에서 현명한 개인이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꿋꿋히 견뎌야한다. 인간은 자연에 맞게 살아야한다. 자연에 맞게 산다는 말은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본성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즉, 1.운명을 받아들이고, 2.인간으로써 마땅히 할 일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망치에 고유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자연에 맞게 산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삶이 편하다. 운명이 있다고 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던 다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운명이 있다고 한들 나는 미리 결과를 모른다. 돈을 벌기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서 내가 부자가 될지 파산할지 무엇이 운명인지 알수없다. 둘째, 그렇기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운명론이 좋은 점은 최선을 다하면서 잘 안되는 일들에 신경을 끌 수 있다. 잘안되도 그렇게 될 일이었고, 잘되어도 그렇게 될 일이었다.
그러면서 본성을 최대한 발휘해야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에는 자연법칙이 있다. 모든 작용에 대해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왜 그런가? 딱히 이유와 목적은 없다. 그냥 그럴뿐이다. 마찬가지로 도덕법칙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하는가? 나도 잘 모르겠다. 자연법칙처럼 그냥 그것이 옳기 때문 아닐까?
좋은 사람들과 헤어졌을때, 상실감이 컸을 때, 나태함에 괴로울때 명상록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여유를 길러주었다. 최선을 다하되 상대의 어떠한 반응이든 개의치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행복할때는 와닿지가 않아서 잘 읽지 않는다. 요즘은 잘 안읽는듯~